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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확성기가 필요 없는 정치_제로원디자인센터
확성기가 필요 없는 정치_제로원디자인센터
_화려함 벗고 조용히 일상성 살린 ‘정치 디자인, 디자인의 정치’전
요즘 대기업의 화두는 ‘디자인 경영’이다. 삼성만 해도 세계 일류기업으로 올라서려면 디자인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라며 디자인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여기에서 디자인의 의미는 상품의 겉모습을 매력적으로 포장하는 데 머물게 마련이다. 그런 상식적인 디자인의 개념을 떠올리며 ‘정치 디자인, 디자인의 정치’전이 열리는 서울 대학로 국민대 제로원디자인센터 전시장에 들어서면 순간 당혹스러움을 느낄 게 틀림없다. 어디에서도 멋들어진 상품의 포장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는 전시장에는 현란한 첨단의 이미지가 떠올라지지 않는다. 대신 벽면을 가득 메운 줄글이나 신문기사, 병원 링거병 꽂이대에 줄줄이 걸린 알전구와 형광등, 평양에서 열린 아리랑 집체극 카드놀이 사진, 대검찰청 대회의실 모습 등이 눈길을 붙잡을 뿐이다. 우리가 디자인의 개념에 포함하지 않았던 일상적인 풍경을 통해 ‘디자인의 정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디자인이 세상에 대해 발언하는 양식은 화려한 상품을 통해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덤으로 디자이너의 정치에 대한 냉소적 속내를 엿볼 수도 있으리라.
사실 디자인이 일상에 개입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디자인 경영’이 아닌 ‘디자인 정치’라고 해서 생경한 구호가 전시장을 도배하지는 않는다. 국가 권력이 디자인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요란하지 않다. 사진평론가 이영준이 해석한 <체어맨 마오의 의자>는 디자인의 정치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위풍당당한 의자는 상대방이 앉아 있을 때 디자인 요소를 촘촘하게 드러낸다. 누가 앉더라도 용무늬 장식과 자잘한 디자인 요소로 앉은 이의 권위를 위압적으로 보여준다. 디자인과 정치의 교묘한 만남이라 하겠다.
그런 양상은 국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고현주의 <기관의 경관>은 권력기구에 대한 주권자의 관점이 인테리어에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일상과 정치가 한 몸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김미영이 시각 이미지로 드러낸 남쪽의 새마을운동과 북쪽의 천리마운동은 전체주의적 상황이 투영된 쌍생아로 보인다. 때로는 김영철의 <영원한 노스탤지어>처럼 권력자가 부드러운 이미지로 표현되지만 거기에도 미세한 정치적 장치가 담겨 있게 마련이다. 어쩌면 디자인의 시각적 요소는 정치적 선동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출처_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