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디자인은 소수이고 숨어있게 마련이다.”
네덜란드의 대표적 디자이너인 아르망 메비스(44·사진)가 디자인 워크숍 진행차 한국에 왔다. 워크숍과 함께 자신의 베스트 북디자인 전시회(‘아웃 오프 프린트:메비스&판 되르센의 그래픽 디자인’)가 열리는 동숭동 국민대 제로원디자인센터에서 지난 6일 오후 그를 만났다.
“건물이든 책이든 추한 디자인이 대부분이고 좋은 것은 소수다. 클라이언트(주문자)의 주류인 기업들 탓이다. 그들은 소비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실험적이거나 창조적인 디자인을 원치 않는다. 그런 탓에 좋은 디자인은 문화영역 등 주변으로 밀려나 있다.”
메비스는 20년 넘게 대학 동창생인 린다 판 되르센과 짝이 되어 전통성과 실용주의, 그리고 실험정신이 결합된 ‘더치 디자인’을 리드해 왔다. 그동안 이들은 로테르담 시티, 암스테르담의 근대미술관과 박물관 등의 시아이(CI·기업이미지통합작업) 작업을 했으며 그곳의 유명 문화전문잡지인 〈메트로폴리스 M〉과, 건축, 디자인 관련 수많은 책을 디자인했다.
하지만 그는 창조적인 디자인은 소수이지만 오래도록 남아 문화를 이끌어 간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디자인은 정보의 효과적인 전달은 물론 독창성, 심미적 즐거움 등 부가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며 그 방법으로 △주어진 자료에 국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동성 △정해진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는 열린 마음 △복잡하거나 무겁지 않고 쉽게 만든 듯한 자연스러움 등을 꼽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직관을 확신하고 이를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디자인은 발랄하고 자유로운데 이는 지켜야 할 전통이 무겁지 않은 탓이다.”
그가 소개하는 네덜란드 통신전화국(KPN)의 다이어리에 얽힌 일화. 뉴미디어의 첨단이미지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사진을 배제하고 휴일에 노는 사람, 늦잠자는 사람들 틈에 소품으로 전화기가 등장하는 사진들을 썼다. △통신은 특별한 게 아니라 일상화되었다 △다이어리에서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 없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납품 뒤 간부들은 다이어리를 사용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뒷말을 들었다.
“나쁜 클라이언트한테 좋은 디자인은 나쁜 디자인이고, 좋은 클라이언트한테 좋은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이다.”
고로 좋은 디자인은 클라이언트와 예산과 디자이너가 만든다는 말씀이다.
전시회는 11월4일까지.
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2007-10-11